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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맞게 사는가?(상)
번호 20655 작성일 2019.09.20 조회수 156
작성자 이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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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걸맞게 사는가? (상)

    걸맞다. 라는 말은 두 편을 견주어 볼 때 서로 어울릴 만큼 비슷하다.라는 말이다.

    즉 견주어 볼 때 적합하다. 알맞다. 어울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걸맞다는 말은 두 편을 견주어 볼 때 서로 어울릴 만큼 비슷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인간과 그에게 주어진 각종 사명과 비교해서 정말 그 사명과 걸맞게 사는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걸맞은 생활을 하는가? 인간은 정글에서 사는 야생동물이 아니고 과학 문명 세계서 사는 지식인이라 정글의 법칙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고

    인간 사회의 법과 원칙에 따라 사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야 인간이란 이름에 걸맞은 생활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짐승과 달라서 윤리와 도덕이 있기에 짐승과 같이 생존본능만 앞세워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논리로 살아서는 인간에 걸맞은 생활은 절대로 아니다.

    짐승 세계도, 제 가족을 위해서는 인간 이상의 정을 주고받고 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에 걸맞은 윤리와 도덕을 버리고 짐승 이하의 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어찌 인간에 걸맞은 생활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요즈음 사건·사고를 보면

    윤리도 도덕도 없는 야생동물보다도 못한 짓을 하고 사는 인간들이 많아서 사회는 점점 잔혹한 짐승같이 변해가는 것이 엿보여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불안하고 두려우며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 “옛날에는 호랑이가 무서웠지만, 지금은 사람이 더 무섭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사람 인(人)자를 보면 서로 의지하고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는 사회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생산하여 가족을 만들고 이웃과 이웃을 합쳐서 사회를 형성하며 사회가 발전하여 국가를 형성해서 국민이 사는 영토와 국민을 위하여 통치자를 새워서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 그 틀 안에서 한 나라의 민족으로서 모두가 행복하게 살려고 각자가 노력하고 사회가 노력하며 국가가 노력하는 것도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라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국민의 자유와 행복한 생활을 위해서 국민이 대통령을 세우고 정치인을 세워서 그들에게 권력까지 주면서 국민을 태평성대의 생활을 보장해달라고 부탁하고 모든 권한을 그들에게 맡긴 것이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최고의 통치자라는 권력을 받았으면 그 책임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국민의 삶의 터전인 국토와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을 국민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이 대통령직에 걸맞게 살려고 하면 하루도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없다.

    연산군이 왕이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노심초사하기보다 어머니 죽음에 대해 복수를 하기 위하여 미치광이처럼 변해서 본연의 임무와 책임은 저버리고 임금이라는 명칭과는 걸맞지 않게 광인이 되어

    폭군의 생활을 하다가 결국에는 왕의 직분과 걸맞지 않은 생활을 하다가 폭군의 말로가 어떻게 되었는가를 역사에 남기고 비참한 생을 마쳤다. 이것이 임금에 걸맞지 아니한 생활을 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삼대 왕인 솔로몬은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왕의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를 알고 그가 한 일은 아버지의 원수인 시므이를 죽이는 일에 골몰하지 아니하고 먼저 책임감에 사로잡혀 하나님께 기도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기도하기를 “지혜를 달라고 하였는데 이 많은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를 자기에게 주시라고”라고 기도하였다.

    이것이 대통령이 취할 태도이다. 만약에 솔로몬 왕이 아버지 원수부터 갚는다고 했다면 세계에서 지혜의 왕으로 이름이 남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이런 행동이 국민의 최고의 통치자가 취할 왕에게 걸맞게 취하는 태도이다.

    그런데 솔로몬 왕이 죽고 그의 아들인 르호보암이 대를 이어 왕이 되었을 때 백성들이 왕에게 말하기를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백성의 제안을 거절하고 폭군이 되어 죽고 말았다. 백성이 원하는 것은 왕이 백성을 섬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하여 결국에 역사에 좋은 왕으로 걸맞게 행동을 하지 못하고 폭군으로 기록되어 매우 큰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백성이 한 나라의 최고의 지도자에게 바라는 것은 고달픈 삶을 덜어주고 무거운 인생살이를 가볍게 해주기를 바라며 그리고 백성을 섬기는 낮은 자세로 백성에게 다가오면 백성은 왕의 종이 되겠다는 것이다. 그

    런데 왕은 백성의 요구를 거절하고 말았다. 이는 백성 위에 군림하겠다는 폭군과 같은 포악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니 왕의 말로도 좋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백성의 최고 통치자의 의무와 책임은 군림하는 것이 아니고 백성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 백성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으로서는 최고 지도자의 격에 걸맞게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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